내 인생 마지막 명당 자연인 김명상20년 전, 멧돼지가 몸을 누이고 노루가 떼 지어 노는 깊은 산중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며 남자가 자리 잡은 그 땅은 절터나 기도 터로 적합하다는, 소위 ‘기가 세다’고 소문난 곳. 그런데 거기서 살아보겠다며 뚝딱뚝딱 집을 짓고 있으니, 산 아래 마을에선 그 남자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처자식 건사하느라 한창 바쁘게 돈 벌어야 할 나이에 왜 저런 험지 중의 험지에 들어와 사느냐, 수상한 사람 아니겠느냐... 하지만 남자는 20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더분한 미소가 여전한, 자연인 김명상(72) 씨다. 사실 그곳은 그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 너머 이모 집에 다녀오겠다며 수시로 넘어본 산길. 열여섯 나이에 장남 노릇 하겠다며 상경했을 때부터 두고두고 그리워했던 길일 테다. 고향 산골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에 묻은 채, 서울에 있는 한 공업사에서 용접을 배웠다는 자연인. 쪽잠을 자고, 한푼 두푼 아껴가며 모은 돈으로 제일 먼저 산 건 부모님이 농사지으실 땅이었다. 고향집 형편이 좀 나아지고 나서야 그는 사업 자금을 모았고, 지금껏 배운 기술을 살려 22살의 나이에 공업사를 차렸다. 주로 호텔이나 방송국 등에서 사용하는 철제 구조물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이었는데, 무거운 걸 나르느라 몸을 혹사하면서도 밤낮없이 일했던 이유는 동생들을 사업에 합류시키기 위해서였다. 결국 사업을 키워 동생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그중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동생에게 경영권을 넘긴 자연인. 이후, 사업을 하며 알던 지인에게 음식점 부지를 소개받아 음식점을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다행히 식당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머지않아 그 식당 역시 막냇동생의 소유가 된다. 동생들에게 먹고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 그가 생각한 맏이 노릇이었다. 맏이의 임무를 해내는 과정에서 땅은 그의 유일한 무기였을지 모른다. 어떤 땅이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 고심 끝에 선택한 사업들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고깃집, 해물탕집, 멧돼지 농장, 국도변 휴게소 등... 그가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키고 처자식과 부모 형제를 뒷바라지 할 수 있었던 건, 땅을 보는 탁월한 안목 덕분이었다. 땅을 선택해 그곳에서 성공을 일구고, 다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던 인생. 그의 마지막 선택이 바로 이 산중의 땅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랜 세월 고향 땅을 그리워했던 자신의 보금자리가 제격이었다. 사람이 살기 힘든 야생의 산골이라지만, 여러 가지 사업을 접하며 다양한 기술을 가진 그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수 터를 닦고, 폐자재를 모아다가 집을 지은 자연인. 식당을 운영하면서 소소하게 체득한 요리 노하우는 지금도 빛을 발하는 중이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가 지켜온 철칙 한 가지는, 야생동물들의 터전에 비집고 들어왔으니 녀석들을 잘 보살피는 것 역시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 그래서 노루 밥을 챙기고, 도롱뇽알과 개구리알을 어미 대신 잘 보살피고, 벌들에게 새 아파트를 지어준다. 그렇게 애쓰는 만큼 이곳에서 봄나물이며 석이버섯까지 풍족하게 얻게 된다는 자연인. 그는 이미 이 생태계의 일부다. 고대했던 귀향. 첩첩산중에서 소박한 행복을 채워가는 김명상(72) 씨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