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김종삼, 임봉례종삼 씨와 봉례 씨의 봄날 자연인 김종삼, 임봉례 집 앞으론 맑은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뒤로는 푸른 능선의 빽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얼핏 보면 2층 집 같지만, 사실은 경사진 땅 위에 일일이 손으로 다져 올린 단층집. 마당 끝 돌계단부터 처마 밑 나무 벽까지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루하루 짓고 고치며 맞춘 집엔, 웃고 싸우고 다시 웃었던 20년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말없이 옆에 와 앉던 남편, 그런 남편을 끝내 뿌리치지 못했던 아내. 수없이 헤어질 듯하다가도 다시 마주 앉게 되는 미운 정. 그 끈끈한 정이 두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왔다. 자연인 김종삼 씨(75)와 임봉례 씨(75). 경남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젊은 날 서울로 올라와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중매로 만났다. 말 없고 무던한 남편, 밝고 수다스러운 아내. 누가 봐도 정반대였지만, 밤낮없이 바느질하고 샘플을 만들며 성실하게 버텨낸 도시살이 속에서 점점 삶의 호흡을 맞춰갔다. 한 달에 몇백만 원을 벌던 때도 있었지만, 인생의 무게는 돈보다 더 무거웠다. 술과 외도에 빠진 시아버지, 견디다 못해 떠나간 가족들. 봉례 씨도 몇 번이고 짐을 싸고 나왔지만, 그때마다 말없이 자신을 찾아온 남편을 보고 다시 마음을 돌렸다. 답답하고 무뚝뚝했지만, 누구보다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견디고 또 견뎠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름 냄새 가득한 도시 대신 풀 냄새 나는 산이 그리워졌단다. 부부는 조용히 서울살이를 접고,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나무를 깎고, 벽을 세우고, 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집. 이젠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신들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중이다. 아내가 깔깔 웃으면 남편은 그저 말없이 바라본다. 그 웃음은 열일곱 소녀처럼 싱그럽고 남편은 그때처럼 말없이,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숱한 풍파 끝에 찾아온 산속의 평온. “서울에선 살 수가 없었어요.”라는 아내, “세탁소 기름 냄새가 싫어서 왔지요.”라는 남편. 각자의 말엔 지친 도시 생활의 무게가 묻어 있다. 좋아하는 음식도 취향도 따로지만 마음만큼은 기가 막히게 통하는 두 사람. 요리 중 말없이 손만 내밀어도 남편은 아내가 뭘 원하는지 먼저 안다. 아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만들기 위해 손수 쌓은 돌계단엔, 말로 다 못 할 애정을 꽃으로 켜켜이 깔았다. 봄이 오자 가장 먼저 손본 건 우물. 얼고 녹기를 반복한 우물 뚜껑을 열고, 찬물에 팔을 담그며 묵은 때를 밀어낸다. 쑥을 뜯고 두릅을 따고 나물을 다듬는 손길은 바쁘지만, 하루 끝엔 늘 마주 앉아 조용히 웃는 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