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660회 : ＜자연밥상＞ 정성 듬뿍 잡내가 없는 돼지머리국.. | 재방송 다시보기 공식영상 보러가기

나의 완벽한 베이스캠프 자연인 김영홍
화려하게 펼쳐진 비단 위에 수십 개의 깃발이 나부낀다. 검은 붓끝이 그려낸 건 다름 아닌 ‘만장’. 죽은 이의 삶을 기리는 장례의 상징을, 살아 있는 지금 그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은데. “내 장례식을 미리 상상해 본 거죠.” 담담한 얼굴로 그림을 내보이는 한 남자. 산속 화실에서 솟대를 깎고 조각을 만들며 죽음조차 잔치처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붓에 담는 사람, 자연인 김영홍(64) 씨다. 그의 하루는 어쩌다 이토록 특별해졌을까. 경북 영천의 부유한 집안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자연인. 머슴을 둘 정도로 넉넉했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엔 대구로 유학을 떠났고 전교 1등까지 하며 부모님의 자랑으로 살았다. 하지만 자유롭고 도전적인 기질은 일찌감치 드러났다. “나는 좀 역마살이 있거든요.”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봐야 직성이 풀렸고 인연이 끝났다고 느끼면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로 나아갔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했고, 실패에도 겁이 없었다. 대학에선 응용미술을 전공했고, 젊은 나이에 미술 학원을 운영하며 지역 미술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점점 회의를 느낀 그는 또 한 번 방향을 튼다. 이번엔 인테리어 사업. 적성에 잘 맞았고, 재미도 있었다. 일본까지 건너가 최신 기술을 익혀올 만큼 열정을 쏟았고 사업도 제법 번창했다. 하지만 공사 대금을 수금하며 겪는 반복된 갈등과 스트레스는 점점 그의 삶을 짓눌렀다. 그 무렵, 미술학원 운영 시절 인연을 맺은 아내와는 성격 차이로 이혼하게 되었고 두 딸과도 점차 멀어졌다. 모든 게 빠르게 멀어지는 기분. 삶이 조금씩 무너졌다. 어느 순간엔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마저 들었지만 운명이었던 걸까. 그는 살아남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찾았다. 그렇게 산을 택했다. 빠르게 성공을 향해 달리던 삶 대신 느리고 단단하게 나아가는 길. 주어진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내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은 마음이 참 편해요.” 그가 산에서 다시 그려낸 두 번째 삶을 따라가 본다. 검정 고무신에 장발의 흰머리를 질끈 묶은 채 자연인은 오늘도 마당으로 나선다. 텃밭에서 막 뽑아낸 미나리를 씻고 도마 위에 올려 들기름 자글자글 두른 미나리전을 부쳐낸다. 우연히 얻게 된 돼지머리로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끓이고 개들에게 줄 고기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이승윤과 함께 솟대를 세우는 일도 열심이다. 묵직한 통나무를 정성껏 다듬고 땅을 고르고 하늘로 곧게 세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해도 그는 천천히 묵묵히 해낸다. 화실 안, 벽을 가득 메운 ‘만장’ 그림들은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기록해 온 흔적이다. 버려진 나무로 만든 솟대와 조각품들 사이, 모양은 달라도 손이 닿은 것마다 그의 시간이 배어 있다. 무너졌던 삶 위에 다시 쌓아 올린 하루하루, 그 특별한 시간이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밤 9시 10분,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공개된다.